1992년 LA 폭동 사건 이야기: 루프탑 코리안 그리고 홍정복
검열과 관련 된 이야기를 적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랄까요. 그런 부분을 생각하다 전에 관련 영상을 본 부분이 갑자기 기억나서 적다가 글이 너무 길어지는거 같아서 여기에 따로 옮겨놓습니다.
LA 폭동 사건
1992년 LA 폭동 사건(1992 Los Angeles Riots)에 관 다큐멘터리 보셨나요? 저는 굉장히 집중해서 봤는데요. 당시 피해 입었던 한국인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었을지..
당시 유명해졌던 Rooftop Korean만 보더라도 한국인 특성이 매우 잘 드러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잊을만하면 볼 수 있는 도심에서의 폭동같은 행위는 절대 하지 않지만, 외부 요인에 맞서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강해지는게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해드리면 아래와 같아요.
LA 폭동은 Beating of Rodney King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타임 라인 순서대로 요약하면
- ‘로드니 글렌 킹‘이라는 이름의 25세의 흑인 남성이 음주 상태로 과속하다 걸림
- 당시 현대 엑셀 차량에 친구 두명이 함께 탑승한 상태였음
- 경찰이 차 멈추라고 지시했으나 도주
- 경찰은 최고 시속 117mph(약 188km)까지 달리며 추격 끝에 차를 멈춰 세웠음. (엑셀에 건장한 남자 3명 태우고 저렇게 달릴 수 있는 차였다니..)
- 경찰 명령에 즉각 응하지 않았고, 심지어 체포 직전에 경찰쪽으로 뛰어들며 도망 시도.
- 경찰은 손잡이 달린 곤봉인 ‘톤파’로 구타
- 알고보니 당시 강도 혐의로 집행유예 기간이어서 도망간거였음
- 두들겨 맞는 장면이 녹화되어 방송되면서 ‘인종 갈등’ 문제로 번짐
- 당시 경찰관 4명은 무죄 판결 (폭동이 일어나자 2명의 경찰관에게 징역 30개월 유죄 판결 내림)
- 폭동
- 63명이상 사망, 2천명 이상 부상, 9500여명이 폭동과 약탈 그리고 방화 혐의로 체포되었고 당시 금액으로 10억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 발생
사실 로드니 킹은 누가 봐도 갱생이 어려운 인간입니다. 이 사건으로 유명해져서 인생이 중간에 잘 풀리긴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99% 확률로 또 범죄를 저질렀을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한국인들이 자경단 조직을 군대 수준으로 만들어서 대항했을까요?
그 이유는 흑인들이 만만하고 조용한 아시아인들이 살던 LA 한인타운에 습격해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백인에게 당한 흑인이 아시아인을 공격하다니.. 어디서부터 이해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죄 없는 한국인들을 원수처럼 공격한 흑인들도 너무나 나쁘지만 미국 언론과 공권력도 굉장히 야비했습니다. 갑자기 그 전에 있었던 한인마켓 주인인 두순자씨가 흑인 소녀를 강도로 오인하고 총을 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의도적으로 보도하면서 불길이 한인마켓으로 향하게 된 원인도 있습니다. 경찰들도 백인 지역에 치중되었구요.
Rooftop Korean
한국에서도 주말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군대에서 총쏴본 경험있는 분?”이라는 질문을 하면 성인 남성 거의 대부분이 손 들 것입니다. 거기다 소총수, 포병, 기갑, 통신병, 작전 등 대부분의 보직들을 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정도죠.
이런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한인타운에 군복이나 소총 냄새도 못맡아봤을 흑인 폭도들이 쳐들어왔으니 게임이 될리 없습니다. 당시 한인타운에 군복무 경험.. 그것도 과거에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3년이 넘게 군생활 하신 분들이었으니.. (*1959년에 복무기간이 33개월로 줄였고 1962년에 30개월로 단축이 되었다가 1968년 남파 무장공작원들이 청와대 습격한 사건 때문에 다시 36개월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 분들이 순식간에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찰도 포기한 지역을 훌륭하게 지켜냈습니다.
경험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경험을 합니다.
(아래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고 지금 군대는 안그럴겁니다.)
- 소총 끝에 바둑알이나 작은 돌을 올려놓고 자세와 호흡 연습까지 많이 했었습니다.
- 상관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PRI. 언제 끝날줄 몰라서 더 힘들어요.
- 총기 수입(손질)
- 0점 사격과 멀가중 멀가중 멀중가중
- 진지 구축
- 화생방 훈련
- 대한민국 최고의 발명가 행보관에게서 전수받는 고철과 폐기물로 뭐든 만드는 기술
- 극과 극 대한민국 폭염과 혹한기에서 하는 훈련
- 맛다시 비빔밥으로 훈련도 가능한 가성비
-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지만 어쨋든 나는 장교다! 중대장이 주는 화생방보다 미치게하는 답답함을 이겨낸 정신력
- 위문 공연따위 필요없고 취침 시간 이후 티비 한 시간만 보여줘도 행복해 함
- 사격 후 탄피 모자란 상황(..)을 겪고나면 급격하게 상승하는 탐색 능력
이런 것들을 하면 청춘을 군대에 바친 사람들이 모인 조직과 일반 폭도들은 게임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 루프탑 코리안은 ‘가장 미국적’인 자기 방어 케이스로 꼽힙니다 그래서 총기 협회에서도 매우 좋아하는 케이스이기도..;
2020년 로드니 킹 사건과 닮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서 미국에서 Roof Korean, Rooftop Korean 구글 검색량이 늘어나기도 힜습니다.
LA 빈민가의 어머니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더 해드리자면, 폭동 당시 유일하게 흑인들이 지켜주던 가게가 있었습니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홍정복씨의 가게인데요. LA 흑인 거주지역에서 빈민들에게 Mama라고 불리며 수녀처럼 사랑을 배풀었던 살아있는 천사같은 분이셨어요. 그런 분도 LA 폭동 7년 후 결국 히스패닉계 무장강도 총격에 돌아가셨네요.. reddit 글도 한번 읽어보세요.
홍정복씨의 장례식은 지역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 지역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장에는 강도를 잡아서 복수하겠다는 글도 있었고, LA 시의회를 현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협조로 15일만에 범인을 체포했습니다. 이 짐 새끼는 출소후에 잔인하게 죽었길 바랍니다.